전체 글56 영화 스물 (한국 코미디, 청춘 서사, 재관람) 스무 살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서른이 되어 다시 보면 더 재미있을까요, 아니면 괜히 꺼내 봤다 싶을까요? 저는 후자를 각오하며 틀었는데, 예상과 달리 꽤 오래 화면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김우빈, 강하늘은 기억하고 있었는데 준호까지 나온다는 건 이번에 다시 보고서야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 시절엔 그냥 웃고 넘겼던 장면들이, 서른의 눈으로 보니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한국 코미디 영화의 공식, 스물은 어디쯤 서 있나한국 코미디 영화에는 이른바 장르 클리셰(genre cliché)라고 부를 수 있는 공식들이 꽤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장르 클리셰란 특정 장르 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 관객이 이미 예측 가능하게 된 서사 패턴이나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가족 캐릭터를 동원한 억지 감동, 어설프게 삽입된.. 2026. 4. 18. 영화 엑시트 리뷰 (시그니처, 클리셰파괴, 디테일연기)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재난 영화에 코미디까지 섞으면 어설프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따따따 따-따-따 따따따" 그 리듬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2019년 개봉해 9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엑시트, 단순한 여름 블록버스터가 아닌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따따따"가 왜 이렇게 기억에 남을까 — 영화의 시그니처 장치재난 영화에서 구조 신호라고 하면 보통 무겁고 긴박한 분위기를 먼저 떠올리지 않으십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엑시트는 달랐습니다.영화 속 주인공 이용남(조정석)이 옥상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장면에서, 극 중 인물들은 모스 부호(Morse Code)로 SOS를 표현합니다. 모스 부호란 짧은 신호와 긴 신호의 조합으로 알파벳이나 숫자를 전달하는 통신 방식으로, SOS는 '따.. 2026. 4. 17. 맨 인 더 다크 (도둑, 맹인 퇴역 군인, 지하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맹인 노인이 영화의 주된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맹인에 노인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겹치면 당연히 약자일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던 거죠. 2016년 개봉한 스릴러 영화 맨 인 더 다크는 그 편견을 처음 30분 만에 완전히 부숴버립니다.도둑들이 선택한 표적, 그리고 그 계산의 실패영화의 설정은 처음엔 꽤 단순해 보입니다. 알렉스, 로키, 머니라는 10대 세 명이 빈집털이를 일삼다가 큰 한탕을 노리고 외딴 집에 침입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표적은 딸의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거액을 받은 퇴역 군인, 그것도 맹인 노인이었습니다. 도둑들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조건처럼 보였을 겁니다. 주변 집들도 비어 있고, 집주인은 눈도 보이지 않으니까요.제가 이 초.. 2026. 4. 16. 겟 아웃 리뷰 (복선 분석, 사회적 공포, 침잠 방)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돌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얼마나 있으셨나요? 저는 겟 아웃을 보고 나서 자막도 없이 두 번 연속으로 돌려봤습니다. 처음 볼 때는 몰랐던 장면들이 두 번째에는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손에 땀을 쥐는 게 아니라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조던 필 감독이 이 영화 한 편에 얼마나 많은 것을 숨겨 놓았는지, 보면 볼수록 놀랍습니다.복선 분석: 처음부터 설계된 공포겟 아웃은 장르적으로 심리 스릴러(Psychological Thriller)에 가깝게 분류됩니다. 심리 스릴러란 물리적 위협보다 인물의 심리와 인식의 왜곡을 통해 공포를 구현하는 장르를 말합니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귀신이 나오는 것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점프 스케어도 아닙니다.. 2026. 4. 15. 올빼미 리뷰 (주간맹, 류준열 연기, 개연성) 조선 시대 실존 인물인 소현세자의 의문사를 소재로 삼은 영화 '올빼미'가 개봉 후 꾸준한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저는 류준열과 유해진 두 배우를 좋아해서 개봉 첫 주에 극장을 찾았는데,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여운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주간맹 — 낯선 공간이 공포가 되는 순간 '올빼미'는 주간맹(晝間盲)이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주간맹이란 낮에는 시력을 거의 잃지만 어두운 환경에서는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 장애의 일종으로, 일반적인 야맹증(夜盲症)과는 정반대의 증상입니다. 야맹증이 밤에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면, 주간맹은 낮에 앞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 낯선 의학적 조건을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 영리하게 활용했습니다.궁궐이라는 공.. 2026. 4. 14. 마녀 배달부 키키 (독립 수련, 슬럼프, 비행의 본질)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저는 제가 꽤 잘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를 다시 꺼내 본 건 직장 5년 차가 되던 해인 지금입니다. 화면 속 키키의 표정이 괜히 낯설지 않았습니다. 마법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 그 장면에서 제 첫 번째 슬럼프가 떠올랐습니다.독립 수련: '특별한 나'와 '평범한 나' 사이의 간극혹시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뭘 잘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던 적 있으신가요?키키는 마녀의 전통인 '독립 수련'에 따라 13살에 홀로 낯선 도시로 떠납니다. 여기서 독립 수련이란 마녀가 성인이 되기 위해 외부 세계에서 1년간 혼자 살아남는 통과의례를 의미합니다. 현대식으로 옮기면 인턴십(internship), 즉 실전 현장에 던져지는 첫 .. 2026. 4. 13.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