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컬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영화는 무섭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곡성을 보면서 느꼈듯이, 진짜 무서운 건 점프 스퀘어가 아니라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파묘 예고편을 보고 남자친구와 극장을 찾았는데, 공포를 못 보는 남자친구도 '무섭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두 번 봤지만 무서운 영화라기보다는 한국 무속과 일본 요괴가 충돌하는 미스테리 스릴러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연출과 한국 무속의 깊이
일반적으로 오컬트 영화는 서양 귀신이나 악령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지만,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거쳐 파묘에서 한국 무속 신앙을 본격적으로 파고듭니다. 여기서 무속 신앙이란 샤머니즘(Shamanism)을 기반으로 한 민간 신앙 체계로, 조상 숭배와 풍수지리, 장의 문화가 깊게 얽혀 있는 전통을 의미합니다(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영화는 미국 부잣집 장자가 원인 모를 신경증으로 목숨을 끊고, 둘째 아들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서 시작됩니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아이마저 위험해지자 유명 무당 화림(김고은)을 부르고, 그는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을 불러들입니다. 김상덕이 묏자리를 보고 "절대 사람이 묻힐 자리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풍수지리학의 핵심 개념인 '음택풍수'가 영화의 중심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음택풍수란 죽은 사람을 묻는 묘의 위치와 방향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전통 풍수 이론입니다.
김상덕은 산 정상의 흉지, 햇볕이 들지 않는 숲, 귀문이 트인 북쪽 방향, 그리고 묘 주변을 배회하는 여우 떼를 지적합니다. 여우는 한국 무속에서 음기(陰氣)의 상징이자 사람을 홀리는 동물로 여겨지는데, 이렇게 여우가 무리지어 사는 곳은 음기가 극도로 강한 '악의 악지'입니다. 쉽게 말해 나쁜 기운을 가두기 위해 일부러 선정한 자리라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한국 묘 문화를 다룬 영화는 이전에 없었기에, 이 설정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화림의 설득으로 대살굿과 이장을 진행하던 중, 일꾼이 사람 머리를 가진 뱀인 '누에 온나(Nure-onna)'를 발견하고 죽이자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죽습니다. 김상덕이 본 평범한 뱀은 한을 풀어주면 퇴치 가능한 한국의 훈령을, 일꾼이 본 누에 온나는 특정 원한 없이 보이는 대로 죽이는 일본의 악재 요괴를 상징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김고은의 무당 연기가 진짜 무당처럼 느껴졌습니다. 무당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무당 그 자체 같았습니다.
친일파와 일본 음양사의 음모, 음양오행으로 풀다
관을 열자 친일파 핵심 인물이었던 박근현이 후손들을 죽이기 시작하고, 손자의 몸에 빙의해 나치식 경례까지 하며 일제에 대한 충성을 드러냅니다. 김상덕에게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말을 남기는데, 여기서 범은 한반도를, 여우는 일본을 상징합니다. 여우는 묘를 파헤친다는 뜻의 '파묘'와도 연결되며, 음기 가득한 악지와 관 아래 숨겨진 또 다른 관, 그리고 일본의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거대한 관 속 '오니(Oni)'는 순수한 악의로 가득 찬 일본의 도깨비 요괴입니다. 오니는 1600년대 세키가하라 전투와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만 명의 목을 벤 다이묘 장군의 영혼이 칼에 깃들어 정령이 된 존재입니다. 무라야마 준지는 이 칼을 조선으로 가져와 거구의 시체에 박아 넣고, 한반도의 허리인 태백산맥 묏자리에 세로로 묻어 쇠말뚝 자체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쇠말뚝을 찾아다니자, 그 위에 친일파 박근현을 묻고 경비를 세워 지키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귀신은 물리적 공격에 약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음양오행(陰陽五行) 이론이 오니를 퇴치하는 핵심 논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음양오행이란 음과 양, 그리고 불·물·나무·쇠·흙의 다섯 가지 성질로 세상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동양 철학 체계입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쇠말뚝이자 불타는 칼인 오니는 불과 쇠의 성질을 지니는데, 불이 쇠를 녹이는 상극 관계입니다. 음기가 가장 강한 밤인 축시(丑時, 오전 1~3시)에 깨어나는 오니는 동이 트고 음기가 약해지면서 쇠의 기운을 가진 신체가 불에 녹아 형체 없는 불의 기운만 남아 땅으로 들어갑니다.
김상덕은 음양오행으로 오니의 파해법을 알아냅니다. 화림이 도깨비가 싫어하는 백마 피를 뿌려 쇠의 기운을 지닌 오니를 양기와 불의 기운으로 약화시키고, 김상덕은 자신의 피로 젖은 곡괭이 자루, 즉 물을 먹으면 강해진 나무로 불에 타 녹고 있는 쇠를 때립니다. 쇠가 나무를 자르는 상극 관계지만, 나무가 오니의 불과 만나며 상생 관계로 불의 기운이 강해지고 쇠로 된 신체는 점점 약해집니다. 상덕이 피를 더 많이 묻히면서 물이 불을 끄는 상극 관계로 불이 꺼지고, 결국 신체가 잘린 오니는 사라집니다.
천만 관객 달성의 비결, 웰메이드 오컬트의 힘
저는 파묘를 극장에서 한 번, 집에서 부모님과 VOD로 한 번 해서 총 두 번 봤습니다. 두 번째 볼 때도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첫 번째 볼 때 놓쳤던 복선들이 보였습니다. 김고은이 휘파람을 불던 장면들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무당의 신내림을 표현하는 연출이 자연스럽고 섬뜩했습니다. 제가 접하지 못한 풍수지리, 장의사, 무당 문화를 깊게 다룬 점도 좋았습니다.
영화 파묘는 후반부 오니가 등장하는 부분부터 호불호가 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볼 수 없는 국산 웰메이드 오컬트 영화라는 점과 한국 무속과 일본 요괴의 콜라보, 오니를 위한 빌드업 과정이 흥미진진하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실제로 개봉 일주일 만에 수백만 명을 돌파하며 멀티플렉스 3사 전체 예매율 51%로 1위를 차지했고, 결국 천만 관객을 달성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솔직히 배우 라인업도 미쳤습니다. 유해진, 최민식, 김고은, 이도현까지 주연 4명 모두 연기를 너무 잘했습니다. 또 좋았던 점 중 하나는 깜짝 놀래키는 점프 스퀘어가 없다는 점입니다. 분위기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게 좋지, 억지로 공포감을 주기 위해 쓸데없이 놀래키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냥 깜짝 놀래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분위기적으로 공포감과 미스테리함을 계속 끌고 가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속신앙을 믿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반반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맞다고 하기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없고,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는 과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기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파묘는 그런 애매한 경계를 건드리며, 우리가 잊고 있던 전통 문화와 역사의 상처를 동시에 끄집어냅니다. 오컬트 장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리고 한국형 공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