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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비주얼, 개연성, 리부트)

by 영화발견 2026. 5. 7.

영화 쥬라기월드 새로운 시작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장면은 왜 이렇게 만든 걸까"라는 생각이 극장을 나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도 이번에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을 보고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화면은 분명 압도적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곱씹을수록 뭔가 허전한 느낌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습니다.

비주얼 vs 개연성, 실제로 검증해봤습니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고질라(2014)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로 이미 스케일 연출에 강하다는 평을 받은 감독입니다. 그 명성대로 이번 영화의 시각적 완성도는 확실히 돈을 들인 티가 납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공룡의 피부 질감이나 광활한 섬 풍경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수준이었고, 케찰코아틀루스 시퀀스 후반부 장면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익룡 떼가 하늘을 뒤덮는 구도에서 제3자 시점으로 캐릭터를 중앙에 배치한 연출은, 점프 스케어에 의존하지 않고도 공포감을 끌어내는 방식이라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비주얼리스트 감독이 만든 블록버스터는 보는 재미만큼은 보장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화면이 아무리 화려해도 캐릭터의 행동이 논리를 잃는 순간, 몰입은 순식간에 깨집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개연성(narrative plausibility)이란, 극 중 캐릭터의 행동이 이야기 내부의 논리와 일관되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저 상황에서 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할 이유가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계속 걸립니다.

제가 극장에서 가장 눈을 의심했던 장면은 고무보트 시퀀스였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맹렬히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노를 젓는 고무보트로 도망치는 발상부터 당황스러웠는데, 거대한 티라노가 보트를 물었음에도 보트가 멀쩡히 버티는 장면은 아무리 영화적 허용(poetic license)을 감안해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영화적 허용이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서사 진행을 위해 관객이 묵인해주는 과장된 설정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허용의 한계를 너무 자주, 너무 쉽게 넘어섭니다.

이번 영화에서 개연성을 해치는 주요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약 원정 호위팀이 필수 장비를 "무겁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버리는 장면
  • 모사사우루스가 서식하는 해협을 아무런 대비 없이 횡단하는 몬도 패밀리의 행동
  • 기가노토사우루스 혼종의 존재 이유와 퇴장 방식이 납득되지 않는 전개
  • 티라노사우루스가 연어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연출

이런 장면들이 누적되면 관객은 더 이상 맹수의 위협을 긴장감 있게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저도 후반부에는 몬도 패밀리가 공룡에게 먹히기를 바라는 자신을 발견하고 좀 씁쓸했습니다. 캐릭터에 감정 이입이 안 되니, 그들이 위험에 처해도 심장이 빨라지질 않았습니다.

소프트 리부트의 실험, 그리고 시리즈의 미래

이번 작품은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2022) 이후 약 3년 만에 돌아온 소프트 리부트(soft reboot)입니다. 소프트 리부트란 기존 세계관과 설정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로 시리즈를 재출발시키는 방식을 말합니다. 데이비드 코엡이 각본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시리즈 팬으로서 기대를 높였습니다. 그는 오리지널 쥬라기 공원 각본을 쓴 인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작가입니다.

그런데 에드워즈 감독 본인이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 '쥬라기 월드'라는 타이틀 자체가 없었다고 언급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유니버설이 브랜드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공룡 이야기를 원했다는 정황까지 더해지면, 이 영화가 기존 팬층과 신규 관객 사이에서 어느 쪽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중간한 위치에 서게 된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됩니다.

IP(지식재산권) 관점에서 보면,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유니버설 픽처스의 핵심 프랜차이즈입니다. IP란 영화, 캐릭터, 세계관 등 창작물에 부여된 지식재산권으로, 대형 스튜디오들이 속편과 스핀오프를 통해 반복적으로 수익화하는 자산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공룡이라는 소재는 여전히 강력한 집객 요소로 작동합니다(출처: Box Office Mojo).

다만 시각적 스펙터클만으로 관객의 반복 방문을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은 최근 블록버스터 흥행 분석에서도 꾸준히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 전반의 속편·리부트 피로감과 관련된 관객 행동 변화는 이미 여러 스튜디오의 실적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출처: IMDb).

제가 이 시리즈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기에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데, 도미니언보다도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습니다. 돌연변이 공룡인 디스트로투스 렉스(디렉스)는 베일에 싸인 채 등장해 기대를 한껏 높였지만, 정작 다른 공룡들과의 박진감 넘치는 전투 없이 맥없이 퇴장해 공허함을 남겼습니다. '공룡끼리 싸운다'는 장르의 본질적인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니, 화려한 CG조차 빈껍데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역설적으로 증명한 것은, 시각 효과의 발전만큼이나 탄탄한 각본과 캐릭터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가입니다. 킬링타임용 블록버스터로서 화면 속 영상미를 소비하는 목적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하드 리부트든, 현재 문제점을 보완한 속편이든, 관객이 캐릭터의 선택을 응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먼저 세워주기를 바랍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이 시리즈를 위해 무언가 다시 한번 힘을 써주길 바라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fIFxrM3g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