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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영화 리뷰 (오컬트 호러, 정신질환, 가족 비극)

by 영화발견 2026. 3. 8.

유전 영화 포스터

저는 오컬트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유전'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호러 영화라고 하면 점프 스퀘어(Jump Square)나 순간적인 공포 연출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방식이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런 장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숨 막히는 긴장감만으로 압도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어깨와 목이 뻐근할 정도로 긴장한 상태로 봤더라고요. 2018년 개봉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데뷔작 '유전'은 21세기 오컬트 호러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최근 그의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개봉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오컬트(Occult)란 '숨겨진' 또는 '비밀스러운'이라는 뜻으로, 악마나 초자연적 존재를 다루는 호러 장르의 한 갈래입니다.

보이지 않는 서사가 지배하는 공포

'유전'의 가장 독특한 점은 영화 속에서 보이는 이야기가 사실 훨씬 더 거대한 서사의 마지막 조각일 뿐이라는 구조입니다. 주인공 애니와 그녀의 어머니 엘렌 사이의 갈등이 중심처럼 보이지만, 정작 엘렌은 영화에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장례식 장면에서 딸 애니의 추도사나 사진으로만 간접적으로 언급될 뿐이죠. 그런데도 엘렌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제가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만난 가족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우울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깊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가족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끔찍하고 숨 막히는 현실이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엘렌은 악마 파이몬(Paimon)을 손자 피터의 몸에 넣기 위한 거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여기서 파이몬이란 악마학(Demonology)에 등장하는 남성 악마로, 남성의 육체를 선호하며 가장 약한 자의 몸에 들어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계획은 엘렌의 죽음, 손녀 찰리의 사고사, 그리고 딸 애니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세 번의 장례식과 파이몬의 대관식(Coronation)으로 완성됩니다. 대관식이란 악마가 인간의 육체를 완전히 차지하고 왕처럼 군림하게 되는 의식을 뜻합니다.

애니와 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의식을 돕는 보조 사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애니가 가족의 비극적 사건들을 디오라마(Diorama)로 재현하고, 찰리가 새의 머리를 이용한 기이한 공작물을 만드는 행위 역시 엘렌의 거대한 계획을 이루는 하부 작업이었던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이 특히 섬뜩했는데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의 계획에 복무하게 된다는 설정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유전되는 비극과 반복되는 운명

일반적으로 호러 영화의 악당은 명확하게 드러나고 주인공은 이를 물리치기 위해 싸운다고 알려져 있지만, '유전'의 주인공 애니는 끝까지 자신이 무엇과 싸우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관객은 전지전능한 엘렌의 시점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비극을 겪는 애니의 무력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영화의 배경을 보면 엘렌은 젊은 시절 악마 숭배자가 되어 자신의 아들을 악마에게 희생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이를 거부하며 16세에 자살했고, 엘렌의 남편 역시 우울증으로 굶어 죽으며 악마의 침입을 막았습니다.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자 엘렌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 세대인 딸 애니의 아들 피터에게 악마를 넣으려는 두 번째 계획을 세웁니다.

과거 애니의 오빠가 16세에 자살했듯이, 현재 피터 역시 정신적·육체적으로 취약한 16세가 되는 시점에 악마가 그의 몸에 들어갑니다. 이런 세대 간 반복되는 비극의 패턴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나 조현병(Schizophrenia) 같은 정신질환의 유전 양상과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란 한 사람 안에 두 개 이상의 정체성이 존재하는 정신질환이며, 조현병은 현실 인식과 사고 과정에 왜곡이 생기는 만성 정신질환입니다.

제 경험상 정신질환이 있는 가족이 그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장애나 정신병의 문제를 가족 개인이 부담하게 되는 구조라서, 사회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지원하고 필요하다면 일정 부분 격리와 함께 자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재활 지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영화에서도 아버지 스티브는 가족을 이 비극에서 구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가장 무력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계속해서 아들, 딸, 아내를 위험한 공간에서 밖으로 불러내려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중요한 순간에 화재로 사망합니다. 들어오려는 힘과 막으려는 힘의 대결에서 막으려는 쪽은 번번이 패배하는 겁니다.

현실의 공포로 읽어낸 오컬트 서사

오컬트 장르가 입혀졌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올렸던 건 실제 상황에서 일어나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만약 악마나 초자연적 존재를 배제하고 본다면, 이 영화는 조현병 같은 유전적 정신질환이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과정을 다룬 가족 드라마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인물인 애니는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로서 아들을 지키려 하는 동시에,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정신질환 때문에 아들을 해치려는 충동에 사로잡힙니다. 영화에서 애니는 세 번이나 아들 피터를 죽이려 시도합니다. 피터가 태아일 때 낙태하려 했고, 어릴 때 불을 질러 죽이려 했으며, 영화 현재 시점에서도 잠든 아들을 죽이려 합니다. 이런 행동은 몽유병 상태나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증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 자료에 따르면 조현병의 경우 일반 인구 대비 유병률이 약 1%이지만, 부모 중 한 명이 조현병일 경우 자녀의 발병률은 10% 이상으로 높아진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 누가 원해서 그런 질환을 얻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유전으로 자신도 모르게 전해지는 공포감이 다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현실적인 공포를 다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타까우면서도 그것이 운명인 거겠지 싶었습니다.

애니가 만드는 디오라마는 가족의 비극적 사건들을 축소 모형으로 재현한 것인데, 이는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하려는 시도이자 동시에 엘렌의 의식을 돕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찰리 역시 할머니를 흉내 내 혀를 '딸깍' 거리는 소리를 내고, 할머니의 그림을 그리며 엘렛의 계획에 보조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결국 새의 머리를 이용한 기이한 행동을 하다 차에 치여 머리가 잘려 죽는 비극적 결말을 맞습니다.

영화 속에서 잘린 머리는 파이몬의 대관식에 필수적인 제물로 사용됩니다. 악마 파이몬이 낙타를 타고 사막에서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그림이 애니가 발견한 책에 등장하는데, 이는 세 번의 장례식, 즉 목을 자르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엘렌, 찰리, 그리고 애니 모두 이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목'은 악마가 피터의 몸에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감독의 의도를 몰랐다면 단순히 공포영화로만 봤을 텐데, 그 이면을 알고 보니 더 공감되고 또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인간이 운명 앞에서 느끼는 거대한 무력감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도 어머니의 영향력이 모든 것의 근원임을 보여줍니다. '유전' 역시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존재가 영화 전반을 압도하며, 운명론적 관점을 깊이 반영하고 있습니다.

'유전'은 단순한 오컬트 호러를 넘어서 가족 내 정신질환의 유전, 세대 간 트라우마의 반복, 그리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노력과 실패를 보여줍니다.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이런 부분이 특히 깊이 와닿았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가족이 사회적 지원 없이 홀로 싸우는 현실은 영화 속 비극만큼이나 무력하고 절망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 현실의 아픔을 반영한 작품으로 접근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cvC7JErF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