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상대방이 틀린 말을 할 때, 저도 모르게 바로 정정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순간마다 말을 먼저 뱉고 나서 뒤늦게 아차 싶을 때가 많습니다. 2017년 영화 원더는 그 충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 작품입니다. 안면 기형 장애를 가진 소년 어기의 학교생활을 따라가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게 됩니다.
우정으로 완성되는 동료 사회화의 마법
어기는 태어날 때부터 안면 기형 장애를 안고 살았습니다. 10살이 되기까지 무려 27번의 수술을 받았고, 오랫동안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며 세상과 거리를 뒀습니다. 여기서 안면 기형이란 얼굴 구조를 이루는 골격이나 연조직이 선천적으로 비정상적으로 형성된 상태를 말합니다. 원인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반복적인 재건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선천성 안면 기형은 약 700명 중 1명 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부모님은 어기를 더 이상 집 안에만 가두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학교에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입학식 날, 어기가 복도에 나타나자 아이들이 양옆으로 갈라졌습니다. 영화는 그 장면을 꽤 조심스럽게 담아냈는데, 저도 보면서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어기는 그 시선들에 이미 익숙한 듯 묵묵히 걸어 들어갑니다.
학교에서 어기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건 잭 윌이었습니다.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과학 시험 중 어기가 몰래 정답을 알려줬고, 잭은 그 뒤 함께 밥을 먹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른들의 권유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둘은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이런 또래 관계를 심리학에서는 동료 사회화(peer socialization)라고 부릅니다. 동료 사회화란 아이들이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규범과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하며, 아동의 자존감과 정서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뜻밖의 배신과 편견의 민낯
영화에서 제가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은 할로윈 파티 직후였습니다. 어기는 헬멧을 쓴 덕분에 그날만큼은 눈치를 보지 않고 학교를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탈의실 쪽에서 잭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기와 친해진 게 결국 어른들 때문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기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저도 함께 굳어버렸습니다.
이 장면이 더 아프게 느껴진 건, 저도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다른 자리에서 한 말을 우연히 듣게 됐을 때의 그 감각.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보다, 그냥 그 순간이 오래 남습니다.
사실 잭은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영화는 그 점을 꽤 공들여서 보여줍니다. 줄리안이라는 또래 집단의 압력, 즉 동조 압력(peer pressure) 앞에서 잘못된 말을 뱉었을 뿐입니다. 동조 압력이란 집단 내에서 다수의 의견이나 분위기에 맞추도록 강요받는 심리적 압박으로, 특히 청소년기에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강하게 작용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의 75% 이상이 또래 집단의 압력으로 본래 의도와 다른 행동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혼자가 된 어기에게 다가온 건 썸머라는 아이였습니다. 어기는 처음엔 그녀도 어른들이 시킨 거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저는 그 심리가 너무 이해됐습니다. 한번 상처를 받으면 다음 친절이 다 의심스러워지는 그 방어 기제, 심리학 용어로는 회피 애착(avoidant attachment)에 해당합니다. 회피 애착이란 과거의 상처로 인해 타인과의 정서적 연결을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려는 반응 방식을 말합니다. 어기의 그 눈빛이 딱 그랬습니다.
원더가 던진 질문, 친절함을 선택할 수 있는가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선택하라." 저는 이 문장에서 꽤 오래 멈췄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옳고 그름을 꽤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 대화 중에 상대가 틀린 말을 하면 바로 정정하는 편입니다. 특히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태도가 딱딱해지고 목소리가 차가워집니다. 상대가 틀렸다는 걸 입증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뒤로 밀려납니다. 사실 중요한 건 제가 옳냐 그르냐가 아니라, 그 순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인데 말이죠.
원더는 어기의 시선에서만 이야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어기의 누나, 잭, 썸머까지 각자의 챕터로 나뉘어 서사를 이어갑니다. 이런 다중 시점 서술(multi-perspective narrative) 구조는 단일 시점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각 인물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기법입니다. 누나의 파트에서는 특히 깊은 공감이 왔습니다. 동생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애써 누르며 지내온 이야기가,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전달됩니다.
영화의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일부 갈등이 다소 빠르게 해소되는 편이고, 서사의 흐름과 크게 연결되지 않는 에피소드가 끼어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정도 흠집이 전체 감동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습니다. 어기를 연기한 배우는 영화 '룸'에서 잭 역을 맡았던 바로 그 아이로, 섬세한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었고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됩니다.
원더가 전하는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차별받는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 친절은 가장 쉬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
- 편견은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에서도 충분히 상처를 남긴다는 것
제 경험상 이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며칠은 머릿속에 남는 영화입니다. 특별히 감동을 찾아서 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면이 하나씩 걸립니다.
원더는 가족과 함께 봐도 좋고, 혼자 조용히 봐도 좋습니다. 다만 가까운 사람에게 무심코 상처를 준 적이 있다면, 이 영화가 꽤 오래 마음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저처럼요. 앞으로는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렇게 마음먹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