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 정도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시대 왕실을 다룬 사극은 이미 수없이 많았고, 단종의 비극 역시 낯선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극장을 나오며 든 생각은 명확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역사를 재현한 게 아니라, 역사 속 인물이 느꼈을 감정의 무게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했구나." 장항준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연출작인 이 영화는 1457년 계유정난 이후 청령포로 유배된 단종 이홍위와, 그를 감시하는 보수주인(保守主人) 엄흥도의 4개월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수주인이란 유배된 죄인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지역 관리를 의미합니다. 역사책이 기록하지 못한 빈 공간을, 이 영화는 밥상과 눈물로 채워냈습니다.
단종의 유배: 청령포라는 고립된 섬에서 시작된 이야기
왕이었던 소년은 어떻게 유배지에서 살아야 했을까요? 1455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은 1457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되었습니다(출처: 조선왕조실록). 영화는 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청령포 근처 가상의 마을 '광천골'과 그곳 촌장 엄흥도라는 인물을 창조해 냈죠.
제가 이 설정에서 흥미로웠던 건, 감독이 '유배지 유치'라는 발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광천골 사람들은 유배 온 인물이 권력자이길 기대했지만, 정작 온 건 이미 폐위된 17세 소년이었습니다. 처음엔 실망하던 마을 사람들이 점차 이홍위를 한 명의 인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이게 바로 이 영화의 진짜 서사였습니다.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이고 한쪽은 절벽으로 막힌, 말 그대로 육지 속 섬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홍위의 심리 상태를 시각화한 장치로 작동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탈출할 수 없는 곳, 뗏목을 타야만 닿을 수 있는 거리감은 왕과 백성 사이의 신분적 거리를 상징하죠. 저는 이 공간 설정이 이 영화를 단순한 사극이 아닌 심리극으로 만든 핵심 요소라고 봅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단종은 유배 4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영화는 이 짧은 기간 동안 이홍위가 겪었을 내면의 변화를 밥상이라는 소재로 풀어냈습니다. 처음엔 분노와 절망으로 밥을 물리던 소년이, 점차 광천골 사람들의 정성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그들과 함께 밥상을 나누게 되는 과정 말이죠.
엄흥도의 충심: 왕의 신하가 아닌 한 사람의 벗으로
엄흥도라는 인물은 실존 인물이지만, 영화 속 그의 모습은 대부분 창작입니다. 역사 기록상 엄흥도는 강원도 영월의 호장(戶長)이었습니다. 여기서 호장이란 고려·조선시대 지방 행정을 담당하던 향리 계층의 우두머리를 의미합니다. 그는 단종이 유배 온 뒤 자주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고, 단종이 죽자 세조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고 전해집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화에서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엄흥도는 코믹하면서도 진중한 인물입니다. 초반엔 마을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유치하려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이홍위와 시간을 보내며 점차 진심 어린 충심을 보이게 되죠. 저는 유해진 배우의 연기에서 특히 두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하나는 이홍위가 자결을 시도하려 할 때 "죽으면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죽습니다"라고 외치는 장면, 다른 하나는 마지막 활줄을 잡아당기며 "이제 강을 건널 때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속 엄흥도는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관리가 아니라, 이홍위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존엄을 지켜주려는 벗이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단종의 죽음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영화는 사약을 거부한 단종이 활줄로 목숨을 끊을 때 엄흥도가 도왔다는 야사를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이 극적이었던 건, 엄흥도가 이홍위의 생을 끊은 게 아니라 그의 마지막 자존감을 지켜준 것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이 영화가 700만 관객을 넘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엄흥도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이었습니다. 왕과 백성이라는 수직적 관계를 넘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수평적 연대를 보여줬으니까요.
신분을 넘은 우정: 밥상이 허문 왕과 백성의 경계
이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소재는 단연 밥상입니다. 광천골 사람들이 매일 이홍위에게 가져다주는 흰쌀밥 밥상은 처음엔 거부당하지만, 점차 소통의 매개가 되고, 결국엔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식탁이 됩니다.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 왕족과 백성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홍위는 자신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짓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신분의 벽을 스스로 허물어버립니다.
제가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보며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이홍위가 죽고 싶을 때는 살게 되고 살고 싶을 때는 죽게 되는 잔인한 아이러니였습니다. 초반 절벽에서 자결을 시도할 때 엄흥도가 그를 구했고, 후반 광천골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세웠을 때는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게 됐죠. 이건 단순한 비극을 넘어, 이홍위가 왕자로 죽은 게 아니라 군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떠났음을 의미합니다.
영화 속 한명회는 유지태 배우가 연기했는데, 기존 미디어에서 보던 음지의 책사 이미지와는 달리 전면에 나서는 권력의 추구자로 그려졌습니다. 장항준 감독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기개가 있고 기골이 장대하다"는 묘사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한명회가 관아에서 태산에게 곤장형을 내릴 때, 이홍위는 "네놈이 감히 왕족을 능멸하는가?"라고 외치지만 한명회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이홍위가 가진 유일한 권위, 즉 왕족이라는 이름표마저 상실한 순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이 이홍위의 진짜 변화를 촉발했습니다. 그는 금성대군의 복위 계획에 동참하기로 결심하지만, 결국 엄흥도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이홍위는 엄흥도를 역모를 막은 영웅으로 만들어주고, 자신은 역모를 꾀한 죄인으로 남습니다. 제 경험상 영화에서 주인공이 희생하는 장면은 많지만, 이 영화처럼 그 희생이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이렇게 명확히 보여준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영화 마지막, 엄흥도가 활줄을 잡아당기며 "이제 강을 건널 때입니다"라고 말할 때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17세 소년의 시신이 강물에 던져지는 장면은 무겁고 참담했지만, 동시에 엄흥도의 손길이 있었기에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이 영화는 패자의 존엄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다루되, 권력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왕이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왕으로서 어떤 책임을 다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저는 학창 시절 역사 공부를 정말 싫어했는데, 이런 영화를 보면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슬픈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고통과 선택을 우리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00만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한 건, 단순히 볼거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홍위와 엄흥도의 우정이 주는 울림이 컸기 때문일 겁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지키는 왕이야말로 진짜 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