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얼굴 리뷰 (외모 편견, 사회적 낙인, 연출 반전)

by 영화발견 2026. 2. 28.

영화 얼굴 포스터

영화를 고르다가 "미스터리"라는 장르 태그를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던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을 보러 가면서 '이번엔 어떤 반전이 숨어 있을까' 기대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제가 기대했던 장르적 쾌감보다 훨씬 더 묵직한 질문 하나가 가슴에 박혔습니다. 2억 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40년 전 한국 사회의 외모 편견을 파헤치면서 동시에 지금 우리의 민낯까지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였습니다.

외모 편견이라는 뿌리 깊은 사회적 낙인

영화는 시각장애인 전각(도장 조각) 장인 임영규와 그의 아들 동환이 40년 전 실종된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시신을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전각이란 도장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전통 예술 분야를 뜻하는데, 시각장애인이 이 분야의 최고 장인이 되었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역설적입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외가 친척들은 정영희에 대해 "못생겼다"는 말만 반복하고, 영정사진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저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영화는 5개의 인터뷰 챕터(chapter)로 구성되는데, 챕터란 영화나 책에서 하나의 완결된 단락을 의미합니다. 각 챕터마다 정영희를 알던 사람들이 등장해 증언하지만, 그들이 내뱉는 단어는 '괴물', '똥걸레' 같은 극단적 표현뿐이었습니다. 저는 이 반복적인 구성이 처음엔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반복 자체가 사회적 낙인(stigma)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연출이더라고요. 낙인이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부정적 꼬리표를 붙여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현상을 말합니다(출처: 한국사회학회).

실제로 저도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얼마나 못생겼길래 저렇게까지 말할까' 하는 원초적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제 안에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가 교묘하게 관객까지 그 편견의 공범으로 만드는 거죠.

눈이 보이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원하는 이유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시각장애인인 임영규가 "못 보는 사람은 아름다운 것이 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오해"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같이 못 보는 사람일수록 아름다운 게 뭘까 정말 많이 생각해"라고 덧붙입니다. 저는 이 대사를 듣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예쁜 외모를 좋다고 느낀다면, 그건 누구를 위한 걸까요? 2세를 고려한 인간의 본능인 걸까요, 아니면 사회가 주입한 가치관인 걸까요?

박정민의 연기는 역시 최고였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들이 과거를 추적하면서 느끼는 혼란과 분노가 그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생생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대한 몰입이 정말 높았고,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분명하게 전달됐다고 봅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SNS 시대의 외모 지상주의, 채용 과정에서의 이미지 평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 등 뿌리 깊은 편견들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씁쓸했습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의 외모 차별 인식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영화는 정영희가 임영규에게 던지는 질문을 통해 본질을 파고듭니다. "나쁜 사람이 착한 척을 하면 착한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 외모라는 겉모습에 가려진 인간의 진정한 얼굴은 과연 무엇일까요?

마지막 사진 한 장이 폭로한 추악한 진실

제가 정말 감탄했던 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었습니다. 사회적 낙인이라는 게 참 무섭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실제로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당한 거죠. 가스라이팅이란 상대방의 심리나 현실 인식을 조작하여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정서적 학대를 의미합니다. 결국 본인들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괴물을 만들어낸 겁니다.

그 모든 것이 마지막 얼굴 사진을 비추는 순간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모두의 추악한 이면을 들킨 것 같았고, 연출이 기가막혔습니다. 정영희를 '괴물'이라 부르던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괴물이었던 거죠. 의류공장 사장 백주상을 비롯한 인물들은 정영희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녀가 불의에 맞서자 집단적으로 그녀를 고립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원래 괴물 같았다'는 거짓 기억을 공유한 겁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5개의 인터뷰 챕터가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면서 중반부터는 다소 지루함이 느껴졌습니다. 새로운 정보보다는 기존 내용의 변주에 가까웠거든요. 또한 캐릭터들의 선악 구분이 지나치게 명확했습니다. 정영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이 추악한 면모만 드러내면서, 현실의 복잡함보다는 도식적인 구조에 갇힌 느낌이었습니다.

장르적 재미보다는 메시지에 치중한 작품이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저는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처음엔 그런 기대감을 갖고 봤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보고 여운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얼굴>에 대해 "성장 중심 시대를 겪어온 근현대사에 대한 우화"라고 설명했습니다. 시각장애인임에도 시각예술 분야에서 성공한 임영규는 성장 시대의 상징이고, 그 반대편에는 성장 담론으로 가려진 혐오를 온몸으로 겪은 정영희가 있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얼굴을 보고 있는가? 겉으로 드러난 외모인가, 아니면 그 안에 숨겨진 진짜 모습인가?

<얼굴>은 장르적 쾌감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성찰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오래도록 남을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103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제 안의 편견을 돌아보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2억 원으로 만든 영화가 수십억 원짜리 블록버스터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magazine806.com/news/articleView.html?idxno=4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