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모아나 2를 보러 가면서 기대치를 조금 낮춰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1편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속편이 그 감동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그 예감은 절반쯤 맞았고, 절반쯤은 틀렸습니다.
초반부, 1편을 뛰어넘을 뻔한 30분
극장 불이 꺼지고 모아나가 화면 가득 등장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등받이에서 몸을 앞으로 당겼습니다. 한층 성숙해진 모아나가 항해를 지휘하는 모습은 단순한 속편의 서막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진짜 성장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1편에서 처음 바다와 눈을 맞추던 소녀가 이제는 선원들을 이끄는 타우타이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타우타이(Tautai)란 폴리네시아 항해 전통에서 최고의 항해술을 익힌 길잡이를 뜻하는 칭호입니다. 쉽게 말해 단순한 선장이 아니라, 별과 조류를 읽어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나침반 같은 존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고동을 부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는 제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이미지보다 소리가 먼저 심장을 건드리는 경험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아나의 여동생 시메가 등장하는 순간, 극장 안 분위기가 한 번 들썩였습니다. 다채로운 표정과 특유의 에너지로 장면 전체를 장악하는 시메 덕분에 초반 30분은 숨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노래 '저 너머로'가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사실 눈가가 조금 촉촉해졌습니다. 1편의 모아나가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 나서는 이야기였다면, 2편의 모아나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그 무게를 짊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책임감이라는 감정을 서사로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그 초반부만큼은 1편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습니다.
OST, 그 강렬한 '한 방'이 사라졌다
저는 1편의 OST를 정말 오래 들었습니다. 'How Far I'll Go'는 출퇴근길 이어폰을 끼고 무한 반복했고, 'Shiny'는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착 달라붙어 한동안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기대를 안고 2편 극장에 들어갔는데, 나오는 길에 입가에 맴도는 멜로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2편의 음악들은 분명히 장면 장면의 분위기를 잘 받쳐주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음악에서 말하는 다이제틱 사운드(diegetic sound)와 넌다이제틱 사운드(non-diegetic sound)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다이제틱 사운드란 극 중 인물도 들을 수 있는 소리, 즉 장면 안에서 발생하는 음악이나 소리를 말하고, 넌다이제틱 사운드는 관객만 듣는 배경음악을 의미합니다. 1편은 이 두 가지가 절묘하게 섞여 음악이 서사 자체가 되었는데, 2편은 음악이 서사를 보조하는 역할에 더 가까웠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음악 제작에는 뮤지컬 극작 분야의 흐름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1편에 참여했던 린 마누엘 미란다가 2편에는 불참한 것이 음악의 임팩트 차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디즈니 리서치에 따르면 관객이 애니메이션을 재관람하게 만드는 요소 중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Disney Research). 그 점에서 2편의 OST가 1편만큼의 신드롬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후반부, 넓어진 세계관의 명암
모아나가 새로운 섬들을 항해하며 여러 인물들을 만나는 과정은 폴리네시아 구전 서사 전통인 오랄 내러티브(oral narrative)의 특성을 차용한 구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랄 내러티브란 문자 이전 시대부터 이어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방식으로, 여러 인물과 에피소드가 큰 줄기 안에 엮이는 구조를 갖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영화라는 매체에서는 양날의 검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동료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각자의 개성이 반짝이긴 했지만, 러닝타임이 충분히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이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 각 캐릭터가 제 몫을 하려다 보니 정작 빌런의 위기감이 희석되는 느낌이었습니다. 1편에서 모아나와 마우이 둘이 티격태격하며 서사를 밀고 나갔던 집중력과는 분명히 다른 텐션이었습니다.
모아나의 최종 해결 방식이 잠수해서 섬에 닿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부분도, 기대했던 '기발한 한 방'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오히려 후반부에서 모아나가 반신반인(demigod)의 능력을 얻어가는 과정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그 능력이 이번 편에서는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반신반인이란 신화 속에서 신과 인간의 혈통을 동시에 가진 존재를 뜻하며, 폴리네시아 신화에서는 마우이가 대표적인 반신반인으로 등장합니다. 모아나가 그 계보에 합류하는 설정은 3편을 향한 포석으로 읽힙니다.
2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단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태평양의 영상미를 담아낸 몰입감 높은 시각 연출
- 시메를 포함한 새로운 캐릭터들의 개성 있는 등장
- '길을 잃어도 괜찮다'는 긍정적이고 보편적인 메시지
- 1편 대비 빌런의 존재감 부족과 위기감 약화
- OST의 임팩트가 1편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
속편 기대, 쿠키 영상이 말해주는 것
쿠키 영상을 보고 나서 제 첫 반응은 "이건 완전한 복선이다"였습니다. 화가 잔뜩 난 1편의 타마토아와 난로가 다시 등장하는 장면은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니라 3편의 방향을 꽤 구체적으로 암시하는 장치로 읽혔습니다. 쿠키 영상이란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동안 또는 이후에 삽입되는 짧은 추가 영상으로, 후속편의 방향이나 세계관 확장을 예고하는 역할을 합니다.
디즈니는 이미 모아나의 세계관을 광대한 태평양 전체로 넓혀 놓았습니다. 신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진정한 길잡이가 된 모아나가 바다의 항로들을 하나씩 연결해 가는 서사는 3편에서 훨씬 더 큰 규모로 펼쳐질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실제로 디즈니는 속편 제작 결정 시 전 세계 박스오피스 성과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데, 모아나 2는 개봉 초기부터 강한 흥행세를 보였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제가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이번 2편이 독립적인 이야기보다는 3편을 위한 세계관 구축에 힘을 더 쏟은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그 추측이 맞다면, 역설적으로 2편의 아쉬움이 3편의 기대감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2편이 주는 아쉬움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여백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편처럼 완결된 감동을 원했던 분이라면 분명 아쉬움이 남겠지만, 모아나라는 캐릭터 자체에 애정이 있다면 그 여정을 계속 따라가고 싶어질 겁니다. 저는 결국 후자 쪽입니다. 모아나가 신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는 3편이 나온다면, 그때는 다짐 같은 거 없이 기대 100으로 극장을 찾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