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멸망 확률 99.78%. 영화 속 과학자들이 이 수치를 들고 백악관에 들어섰을 때,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코미디를 기대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웃겼는데 웃기지 않은, 그 이상한 감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블랙코미디로 해부한 현대 사회의 풍자 구조
일반적으로 재난 영화라고 하면 인류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정반대였습니다. 이 작품은 재난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재난 앞에서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구조적 실패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핵심 장치는 소행성 충돌입니다. 그런데 감독 애덤 맥케이가 이 소재를 고른 이유는 단순한 스펙터클이 아닙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인류가 소행성 충돌 같은 자연재해에 대응할 기술을 확보했다면, 오히려 그 기술을 둘러싼 인위적 충격을 더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영화는 그 명제를 그대로 시각화합니다. 소행성 자체보다, 그 사실을 알고도 외면하거나 이용하는 인간의 탐욕이 진짜 파멸의 원인으로 묘사됩니다.
블랙코미디(Black Comedy)란 비극적이거나 어두운 소재를 유머와 풍자로 뒤틀어 표현하는 장르입니다. 쉽게 말해 웃기는데 씁쓸하고, 씁쓸한데 또 웃기는 그 불편한 감각이 핵심입니다. 이 영화는 그 문법에 충실합니다. 백악관 참모들이 지구 멸망 브리핑보다 대통령의 지지율에 집착하는 장면, 자낙스(Xanax)를 수시로 복용하면서도 분노를 멈추지 못하는 케이트의 모습, 소행성 광물 채굴로 4조 달러를 벌 수 있다는 테크 기업 CEO의 제안에 국가 지도자가 솔깃해하는 장면들. 이것들이 단순한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올린 대통령은 특정 정치인 한 명을 모델로 하지 않습니다. 금발 외모, 전직 리얼리티 TV 스타 경력, 과학에 대한 노골적 무관심, 아들을 비서실장으로 앉히는 인사 방식 등 여러 실제 정치인의 특징을 한데 섞어 놓았습니다. 제가 경험상 이 설정에서 더 소름 돋았던 것은, 어느 한 사람을 떠올리기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떠오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특정 정치 진영을 겨냥하는 게 아니라, 구조 자체를 비판한다는 증거입니다.
이 영화가 풍자하는 핵심 대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치계: 과학적 사실보다 지지율과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권력자
- 미디어: 지구 멸망보다 팝스타 스캔들을 더 크게 다루는 아침 방송의 구조
- 테크 기업: 위기를 비즈니스로 전환하며 인류의 구세주를 자처하는 CEO
- 대중: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여론에 따라 사실보다 감정으로 반응하는 집단
미디어 알고리즘과 테크 기업, 현실과 얼마나 닮았나
영화에서 제가 가장 직접적으로 충격받은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천문학 박사 랜들과 케이트가 유명 뉴스 방송에 출연해 혜성 충돌의 위험을 알리려는데, 진행자들은 이 소식을 "너무 무거운 뉴스"라며 가볍게 흘려보냅니다. 그 직후 같은 방송에서 팝스타 커플의 결별 소식이 더 뜨거운 반응을 얻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과장이라고 웃어넘기려 했는데, 팬데믹 초기 뉴스 피드를 떠올리자 더 이상 웃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미디어 알고리즘이란 플랫폼이 사용자의 클릭, 체류 시간, 반응 데이터를 분석하여 더 많은 관심을 끄는 콘텐츠를 우선 노출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플랫폼의 광고 수익과 사용자 체류 시간 극대화를 목적으로 설계된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뉴스 방송이 멸망의 위기보다 연예 가십을 앞세우는 것은, 바로 이 알고리즘 논리가 언론 편집권에까지 침투한 현실을 꼬집습니다.
테크 기업 CEO 피터 이셔웰은 애플, 구글, 페이스북,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한 인물에 압축해놓은 캐릭터입니다. 그는 소행성 채굴을 통해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습니다. 희토류란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필수적인 17가지 금속 원소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현재 전 세계 공급망에서 전략 자원으로 분류됩니다(출처: 미국 지질조사국 USGS). 영화가 이 자원을 소행성 충돌 대응의 핵심 명분으로 설정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실제로 테크 기업들이 기후 위기, 에너지 문제 같은 인류의 과제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전환하는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 설정입니다.
피터가 개인 맞춤 알고리즘으로 수집한 수십억 명의 데이터를 쥐고 있다는 설정은 단순한 SF적 과장이 아닙니다. 실제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방식은 각국 정부와 규제 기관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출처: 유럽연합 데이터보호위원회 EDPB).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던 이유는, 영화가 그 구조를 악당의 음모가 아니라 합리적 비즈니스 모델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그 모델의 수혜자인지 착취 대상인지 여전히 헷갈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 온 세상이 혼란과 분열 속에서 종말을 맞이하는 그 순간, 주인공 랜들이 선택한 것은 정치적 투쟁도, 마지막 영웅적 행동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한 끼였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실제로 생각했습니다. 비극적인 결말인데, 가장 따뜻한 장면이었습니다. 그 역설이 이 영화의 진짜 힘입니다.
이 영화를 그저 정치 풍자극으로 소비하고 끝내기엔 아깝습니다. 팬데믹을 경험한 세대라면, 특히 정보가 범람하는데도 정작 중요한 것은 묻히던 그 감각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다시 볼 만한 작품입니다. 보고 나서 씁쓸하다면, 그게 정확히 감독이 의도한 반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