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제작비, 홍보전략, 미야자키)

by 영화발견 2026. 3. 5.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 영화 포스터

남자친구가 지브리 신작을 보러 가자고 했을 때, 저는 요네즈 켄시가 부른 '지구본'이라는 OST를 먼저 접했습니다. 노래 가사가 너무 좋아서 제 문장 수집 노트에까지 적어둘 정도였는데, 정작 영화를 보고 나니 "어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2023년 일본에서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자전적 애니메이션으로, 84억 엔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지만 '난해하다'는 평가가 끊이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제작비만 100억 엔 이상이 투입되었고, 7년간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기존 지브리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맞이했습니다.

100억 엔 제작비와 무(無)홍보 전략의 역설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가 선택한 '정보 제로' 마케팅입니다. 그는 정보 과다의 시대에 정보가 없는 것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지브리는 개봉 전까지 포스터 한 장만 공개했을 뿐, 예고편도, 줄거리도, 캐릭터 소개도 일체 내놓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남자친구와 함께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러한 전략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지브리의 탄탄한 재무구조가 있습니다. 2022년 기준 스튜디오 지브리는 총자산 267억 엔, 이익잉여금 219억 엔, 순자산비율 92.4%를 기록했습니다(출처: 일본 기업정보 데이터베이스). 여기서 순자산비율이란 기업의 총자산 중 부채가 아닌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하는데, 92.4%라는 수치는 거의 빚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지브리는 흥행 실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재정적으로 안정된 상태였습니다.

제작비는 미야자키 감독의 전작 《바람이 분다》의 50억 엔을 두 배 이상 뛰어넘는 100억 엔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7년이라는 제작 기간 동안 디지털 작업을 최소화하고 수작업을 고집한 결과입니다. 홍보비를 아낀 게 아니라, 애초에 홍보 자체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브리는 몇 가지 암호 같은 메시지로 화제를 만들었습니다. "지구본을 들어주세요. 미야자키 씨가 매일 듣고 있어 기쁘네요"라는 모스 부호 같은 문장으로 요네즈 켄시의 OST 참여를 암시했고, 개봉 당일에는 엔딩 크레딧에 배우 이름만 공개하고 배역을 밝히지 않아 팬들이 온라인에서 배역 맞추기를 즐기도록 유도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관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극대화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긍정 평가 86%를 받았지만, 10월 중순 기준 흥행 수입은 84억 엔에 그쳤습니다(출처: 일본 영화 흥행 통신). 미야자키 감독의 이전 작품들이 달성했던 100억 엔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 셈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를 이해합니다.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고백, 마히토라는 소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태평양 전쟁 중 어머니를 잃은 소년 마히토가 아버지의 재혼 후 이세계로 떠나는 여정을 그립니다. 이 이야기는 미야자키 감독 본인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요시노 겐자부로의 원작 소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소년 시절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 작품을 통해 "내가 계속 피해 왔던 일, 나의 일을 해야 한다"는 자전적 메시지를 담고자 했습니다.

영화에는 존 코널리의 판타지 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책》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전쟁 중 어머니를 잃고 마음을 닫은 소년, 계모와 이복동생, 이세계로 인도하는 캐릭터 등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모험 서사가 매우 유사합니다. 여기서 '모티프'란 작품의 핵심 소재나 반복되는 주제를 의미하는데, 미야자키 감독은 코널리의 소설에서 가져온 모티프에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녹여냈습니다.

마히토는 포뇨나 토토로처럼 귀여운 캐릭터는 아닙니다. 공습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인간의 말을 하는 왜가리에도 크게 놀라지 않는 냉정하고 무신경한 성격을 보여줍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마히토가 왜 이렇게 감정 표현이 없는지 의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백일몽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백일몽(daydream)이란 깨어 있는 상태에서 꾸는 공상을 말하는데, 꿈속에서는 놀라운 일이 생겨도 즉각 반응하지 않고 모호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히토의 가장 충격적인 행동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돌로 찍어 자해하는 장면입니다. 학교에서 따돌림당한 복수라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어머니를 잃은 깊은 상처와 새어머니 나츠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면의 악의를 표출하는 방식입니다. 이 상처는 마지막에 마히토가 스스로 만든 상처를 매만지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깨달음 이후에도 흉터는 남지만 그 흉터를 통해 깨달음이 존속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히토의 변화는 어머니가 미래의 마히토에게 남긴 책을 읽고 나서 시작됩니다. 이 책은 쇼와 12년, 즉 전쟁이 시작된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어머니는 전쟁의 불안 속에서 자신이 마히토가 책을 읽을 때까지 살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통해 마히토는 사회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모험을 통해 자신 이외의 세계를 개념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미야자키 감독 역시 어린 시절 공습을 경험하고 어머니를 잃었으며,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 이 책이 남긴 울림이 지금까지 남아 전력을 쏟은 작품의 제목으로 정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마히토는 처음에는 자신의 좁은 세계 이외에는 관심 없던 소년이었으나, 와라와라를 걱정하고 왜가리를 돕고 나츠코를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등 점차 변화합니다.

왜가리, 큰할아버지, 그리고 지브리 사람들

이 영화에는 미야자키 감독과 함께 지브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모습이 캐릭터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왜가리는 마히토를 이세계로 유혹하며 큰할아버지의 후계자를 찾으려는 목적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존 코널리의 소설에 나오는 '뒤틀린 남자'와 유사하지만, 왜가리는 결국 인간미를 보이고 마히토와 친구가 됩니다. 이 왜가리는 지브리의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를 상징합니다. 거짓말쟁이라는 역설적인 설정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 세계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남자친구에게 "아리송해서 잘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왜가리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의 첫 만남과 신뢰 관계가 이 캐릭터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키리코 할머니는 존 코널리 소설의 '키코리'와 유사한 캐릭터로, 지브리의 색채 설계를 담당했던 야스다 미치오를 상징합니다. 여기서 색채 설계란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와 배경의 색상을 총괄하는 역할을 의미하는데, 야스다는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 사이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인물입니다.

큰할아버지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상징합니다. 그는 미야자키 감독에게 창조적인 지식인이자 현자였으며, 13개의 돌은 미야자키 감독이 만든 13편의 작품이자 지브리 세계관을 이루는 창조적인 힘입니다. 큰할아버지가 후계자를 찾고 세상을 계승하려는 모습은 은퇴와 복귀를 반복했던 미야자키 감독의 고뇌를 반영하지만, 마히토는 이를 거절하며 새로운 계승에 대한 감독의 변화된 생각을 보여줍니다.

잉꼬들은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인간을 모방하고 욕망적으로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잉꼬 대왕이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은 문명과 욕망이 우리를 추악하게 만들고 날지 못하게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영화의 핵심 상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왜가리: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 거짓말쟁이이자 신뢰할 수 있는 친구
  • 큰할아버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창조적 지식인이자 현자
  • 키리코 할머니: 야스다 미치오, 두 거장 사이의 버팀목
  • 13개의 돌: 미야자키 감독의 13편 작품, 지브리 세계관의 창조적 힘
  • 잉꼬들: 욕망에 갇힌 보통 사람들, 날 수 있지만 날지 못하는 존재

저는 포스터에 나온 왜가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직접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포뇨나 토토로처럼 귀엽지는 않지만, 이 캐릭터가 가진 복잡한 상징성을 알고 나니 더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마히토가 돌을 가져온 뒤 왜가리는 지금까지의 일을 "금세 잊어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 영화가 감독의 인생과 다름없는 꿈과 환상일 뿐, 대단한 메시지나 의미를 담기보다는 관객 각자가 작은 깨달음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얻는 것으로 족하다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추상적이고 어렵다고 느꼈지만,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 영화가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독이 하나하나 설명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난해하다는 평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기보다는 일본의 역사적인 부분과 감독 본인의 삶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을 겪고 어머니를 잃었으며, 스스로 바른 길을 가고자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신의 모습이 마히토를 통해 표현된 것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게 된 요네즈 켄시의 '지구본' 노래 가사처럼, 이 영화는 관객 각자가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57HCigXvUU